

지난해 전복이 김을 제치고 전남 최고의 수산물로 등극했다. 1983년 완도 노화도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복 양식이 시작된 지 34년만이다. 그동안 전남은 전국 전복 생산량의 97.1%(2015년도 기준)를 차지할만큼 전복은 명실상부한 전남의 대표 수산물로 성장했다. 2016년 전복 생산액은 3415억원으로, 김(3414억원)을 제쳤다. 완도를 시작으로 해남, 진도, 강진, 고흥 등 전남의 해역 곳곳의 양식장에서 전복이 자라고 있다.
전남어촌특화지원센터는 전남도해양수산과학원과 함께 전복산업의 기반이 되는 지역 내외 종자업체 11개 업체들을 대상으로 ‘현장 클리닉’에 나서고 있다. 사료영양, 질병위생, 생산기술 등 각계 전문가들을 업체에 직접 파견, 개선 사항 지적, 업체 대표 애로 상담, 최신 정보 전달 등을 통해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진도, 해남, 제주 등에서 실시된 1차 클리닉에는 김도기(61) 전복 컨설턴트, 전남도해양수산과학원 수산종자과 노한성(58) 전복팀장, 선승천(40) 박사, 정병길(36) 연구사 등이 참여했다.
◇전복 암수의 특성 고려한 독특한 채란·배양 과정=전복 종자업체는 암컷에서 알을 받아 수컷의 정충과 섞고, 부화시켜 이를 3cm의 치패로 키운 뒤 양식장에 공급하고 있다. 이 과정에는 3월에서 11월까지 8개월이 걸린다. 자연상태의 전복이 6월에 알을 낳는데, 인위적으로 이를 3개월 앞당겨 조기산란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채란, 부화, 배양 등에 필요한 시설을 갖춘 업체 내는 섭씨 영상 20도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한낮 봄기운이 완연한 종자업체 한 켠 시멘트 위 그물바닥에는 건강하게 보인 수컷 10여 마리가 괴로운 듯 온 몸을 뒤틀며 움직이고 있다. 3년산 이상으로 어른 손바닥만한 수컷은 1시간 이상 뜨겁고 메마른 곳에서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채란시설 내 암실에서는 아이스박스 내 자외선 살균물에는 암컷들이 알을 낳고 있었다. 야행성인 전복 암컷의 자연 상태 그대로의 산란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암컷이 마리당 300만∼500만개까지 낳는 알은 파란색 대야에 넣어둔다. 다음은 수컷의 정충을 받을 차례. 시멘트 바닥에서 죽기 직전의 건강한 수컷을 약간의 전기가 흐르는 자외선 살균물에 넣으면 곧바로 엄청난 양의 정충을 방사한다. 이에 대해 노한성 전복팀장은 “모든 생물이 그렇듯 죽음이 다가오면 필사적으로 종족을 보존하려는 본능이 나온다”며 “수컷이 죽기 직전에 가장 건강하고 많은 양의 정충을 방사하는 것은 그 같은 이유”이라고 말했다.
알과 정충을 적정하게 섞어 부화시키는 것이 핵심기술력이다. 종자업체들은 10년 넘게 전복 치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파란 대야에 알을 넣고 정충을 넣은 뒤 5일 정도가 지나면 부화된다. 부화한 치패는 산소가 공급되는 섭씨 영상 15∼16도의 바닷물 속 파판(PET 재질의 판)에서 3cm까지 자란다. 치패는 파판에 붙은 규조류와 인공사료를 먹는다.
19년간 종자업체를 운영중인 서당수산 김동수(54) 대표는 “과거에는 치패가 부족해 1.5cm 정도 크기에 공급해도 돈을 맡겨놓을 정도였다”며 “그런데 업체들이 많이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3cm까지 키우고 있는데 인공사료 가격이 많이 상승해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바닷물을 제대로 정화하지 못할 경우 폐사하는 경우도 빈발하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렇게 키운 전복 치패는 마리당 350원에 양식장에 공급된다.
◇전복 양식 34년, 폐사율 줄이고 고부가가치 창출 과제=전복 양식은 1983년 완도 노화도의 오성수산이 최초로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 미역 등 해조류만 양식했으나 풍작과 흉작이 거듭 반복돼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는 것이 전남도 해양수산과학원 해남지원 오성균(59) 수산경영팀장의 설명이다.
오 팀장은 “전복 양식기술은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들여온 뒤 시험장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우리나라의 여건에 맞게 이를 실험하는 수준이었다”며 “어업후계자들을 상대로 양식기술을 보급하고 있었는데, 완도에서 첫 시도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산 전복은 당시 1관(3.75kg)에 16만원에 달했다. 1982년 쌀 80kg 1가마 가격이 6만여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가다.
초기 전복양식은 채롱식(그물을 바구니 형태로 만들어놓고 그 안에 전복을 넣어 기르는 방식)이었다. 직접 손으로 바구니를 열어 다시마, 미역을 넣어줘야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대규모 양식은 불가능했다.
이 채롱식에서 이중간승 채롱식(이층으로 줄을 연결해 채롱을 달아놓는 방식)으로 발전한 뒤 1990년대 초반 반가두리 양식이 도입되면서 ‘전복 대중화’가 가능해졌다. 이어 2000년 가두리양식이 성공한 뒤 전복은 이제 누구나 맛볼 수 있는 ‘국민건강식재료’로 거듭났다.
김도기(61) 전복 컨설턴트는 “양식장에서 매년 6월 폐사율이 높은 이유는 전복들이 대량으로 알과 정충을 방사해 체력이 떨어지고 산소가 부족해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며 “품종을 개량화하면서 전복의 부가가치를 더 높이는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돼야 전복산업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광주일보/윤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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