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훈(33) 씨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전복 가두리 양식업계에서는 베테랑 측에 속한다. 본격적인 귀어는 14년 전인 지난 2004년에 했지만 평생을 가두리 양식업에 종사한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부터 양식일을 해왔으니 실제 경력을 이보다 훨씬 많다.
이제는 어엿한 양식인이 됐지만 이 씨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고향 청산도 주민들의 수익 증대와 품질 좋은 ‘청산 전복’의 세계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 씨는 어렸을 적부터 양식업에 종사하기로 결심했지만 귀어의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여수대학교 양식과 1학년 재학 중 갑자기 청천벽력이 들린다. 아버지가 대장암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씨는 “항상 우러러 봤던 아버지에게 갑자기 큰일이 생기니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며 “빨리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돌봐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청산도로 돌아왔다. 뜻하지 않은 귀어였다. 당장 아버지가 운영하던 전복 가두리 양식장을 돌볼 사람이 없었다. 학교를 그만 두고 아버지를 이어 양식장 일에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스무살이었다.
(사)한국전복산업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이 씨의 아버지 이승열(66) 씨는 ‘청산 가두리 양식의 대부’로 불리고 있다 아버지는 이 씨에게 최고의 스승이었다. 아버지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지만 양식일은 쉽지 않았다. 지금은 1600칸(1칸 2.4m×2.4m)에 달하는 가두리 양식장과 6611㎡ 규모 축양장을 거뜬하게 운영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적은 규모의 운영에도 힘에 부쳤다.
귀어를 시작했을 때 보다 종묘생산장(축양장)의 규모는 2배 이상, 가두리양식장 규모는 3배 가량 늘어났다. 전남해양수산기술원 완도지원으로부터 어업인 후계자금을 비롯해 영어자금 등 약 2억 4000만 원을 지원받아 시설에 투자했다.
“아침에 수협 경매장으로 가는 배 시간 때문에 매일 새벽 5~6시에 일어나야 하니 힘들더군요. 지금이야 적응돼서 괜찮지만 20대 초반 나이에는 잠을 깰 때마다 고역이었어요.”
하지만 전복 양식이 천직이라는 생각에 그만둘 생각은 없다. 이 씨는 “바닷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저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다”며 “올해 전복 값이 많이 떨어졌지만 더 좋은 전복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제는 어엿한 양식인이 된 이 씨는 매년 평균 전복 250톤을 생산하고 있으며, 연 매출은 12억 원에 이른다. 어촌계 뿐 아니라 청산수산업경영인회에 가입해 사업부회장을 맡고 있다. 성실함을 인정받은 결과다.
이씨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유통을 맡고 있는 형 정호(36)씨와 함께 지난 2013년부터 인터넷 판매사이트(www.청정수산.com)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3월부터는 소매 유통에도 뛰어들어 직접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또 3년 전부터는 뜻이 맞는 주변 양식인들과 함께 청산 전복의 수익 증대를 위해 자패(子貝)부터 육성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 방법이 성공하면 기존 청산 전복 양식인들의 소득이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는 “고향 청산도에서 생산한 전복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아직 젊은 만큼 끊임없이 도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주일보/글·사진=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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