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어 6년차 양형택(51·사진)씨의 성공 비결은 ‘가족’으로 압축된다. 양씨 삼형제는 남다른 우애를 자랑하며 진도에서 전복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울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16년 동안 일한 양 씨가 귀어로 마음을 굳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했기에 양 씨는 6년 전 귀어를 택했다. 명절에 진도대교를 지나 고향을 찾으면서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리라’고 수없이 되뇌었던 다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전복양식 초보였던 양 씨에게 두 동생은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 삼형제는 각자 전복양식장을 운영하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양 씨는 “고향이어도 실패 확률이 높은 것이 귀어”라며 “동생들이 양식장 기반을 다지지 않았으면 지금의 성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양 씨의 귀어자금은 퇴직금 1억 원과 울산 집을 팔고 남은 돈뿐이었다. 그는 양식장 설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정보와 지원을 찾아 다닌 끝에 전남도해양수산과학원 진도지원으로부터 2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기술 교육을 받고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구하기도 했다.
그는 귀어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수온 현상으로 치패 400만 마리가 폐사한 불운을 겪었다. 전복양식에서 ‘자연’이 가장 큰 변수라는 점을 깨달은 그는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양 씨는 그 다음 해 전복 종묘 300만 패를 생산해내는 결실을 얻었다. 그는 수익 구조를 과감히 바꾸고 5~7㎝ 크기의 중간양성 전복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육상 양식장의 중간패 양성 비중을 70%까지 늘려 폐사율을 낮췄다.
양 씨가 제조업계에서 쌓은 경험은 큰 도움이 됐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연구한 근성이 전복양식에서도 발휘된 것이다. 그는 육상 가두리 양식을 할 때 적정 수위를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등 자신만의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양식 기자재의 소재와 구조를 바꿔가면서 효율적인 양식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양 씨는 귀어하면서 결심한 것이 한가지 있다. 자녀들에게 각자 방을 한 개씩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그는 진도에 집을 지은 뒤 귀어했다. 진도에 정착할 당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자녀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됐다.
올해 처음으로 아내와 둘이서만 살게됐다는 양 씨는 새삼 세월을 실감하고 있다. 양식 사업이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그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 골프, 배드민턴 등 스포츠가 취미활동인 그는 최근 사진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조선대학교를 다닌 양 씨는 동문들과 사진 동호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고군 앞바다 풍경의 진가를 앵글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일상의 행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며 “동호회 전시회에 낼 사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어가 도시 생활보다 나은 점을 물었다. “여유로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매일 해 뜨기 전 일어나 일을 하지만, 일찍 시작하는 만큼 오후에는 여유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주도적’으로 생활하는 매력도 꼽았다. 양 씨는 “회사 조직의 경우 업무가 분업화돼 하는 일이 국한돼있지만, 전복양식은 생산부터 유통까지 자신이 종합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스스로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광주일보/글·사진=백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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