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어 8년차 지명철(39)씨는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완도 신지도가 고향인 지씨는 지난 2010년 귀어했다. 병환이 깊어진 부친을 대신해 양식업을 물려받기 위해서였다. 지씨는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귀어에 마음을 굳혔다. 당시 결혼 3년차였던 지씨의 아내 기달래(37)씨도 지씨의 결단에 힘을 보탰다.
지씨는 바다에서 성공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지씨는 잠수사 경력을 지니고 있다. 필리핀 세부에서 다이빙 체험 지도를 했던 지씨는 그곳에서 우연히 아내를 만나 사랑을 키워 화촉을 밝혔다.
지씨는 완도군 신지면에서 한해 600t의 톳, 다시마, 미역을 양식하고 있다. 전체 양식장이 10ha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제법 크다.
채취부터 포장, 판매까지 모든 생산·유통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지씨는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를 활용해 소비자가 쉽게 주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상품은 연중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으로 입소문이 났다. 최근 고객 맞춤형 선물세트까지 선보여 호응을 얻고 있다.
지금은 2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성공한 사업가가 됐지만 귀어 초기는 순탄치 않았다. 갑작스럽게 양식업을 물려받은 터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특히 종묘 선별에 애를 먹었다. 좋은 종묘를 쓰는 것은 양식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데, 지씨에게는 종묘를 고르는 안목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3년가량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씨는 이제 종묘 선별에는 선수가 됐다. 비결은 ‘발품을 파는 것’이었다. 조바심내지 않고 경험을 쌓는 것에 집중했더니 자연스럽게 종묘를 골라내는 기술이 생긴 것이다.
지씨는 “기술이 없으면 망하기 가장 쉬운 곳이 바다”라고 말했다. 물속에서 혼자 자라는 것 같은 해조류도 시기를 못 맞추면 썩고, 떨어져 나가 폐사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귀어하고 이듬해 태어난 딸이 지씨에게 큰 힘이 됐다. 하지만 귀어 초기에 팍팍한 살림에 육아까지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 구입비와 한해 8000만 원에 달했던 종묘 값을 감당하기 버거웠다. 생활비를 벌 목적을 제주도까지 가서 민간 잠수사 일을 하기도 했다.
지씨는 3년간 실패를 거듭하다 동료 어민에게 종자를 심는 법부터 수확하는 법까지 차근차근 배운 뒤에야 자리를 잡았다. 학구파인 지씨는 한국수산벤처대학 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지씨는 “정부나 지자체의 귀어인 교육이 있다고 해도, 세세한 바다 환경이나 어업 기술까지 모두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수십 년 생업으로 바다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살아온 어민들에게 눈썰미로 배우는 비법, 경험에서 나온 기술을 배우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지씨는 지난해부터 2년 동안 완도군 수산업경영인 신지면 협의회 회장을 맡아 지역 어민 활동을 도왔다. 내년부터는 청년회 상임 부회장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올해로 수산업경영인연합회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지씨는 이제 지역 봉사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지씨와 뜻 맞는 청년 어민들은 ‘365 기동대’를 결성해 섬 곳곳의 해양 쓰레기를 치우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의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을 살피는가 하면 협회 회원들과 십시일반으로 모은 성금을 꾸준히 기탁하고 있다. 지난 2014년에는 지역에 선행을 베풀고 어민들과 화합을 이끈 공로로 전남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지씨는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귀어인의 삶에 더 없는 만족을 느끼고 있다”며 “이상 기온으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어민들이 애를 먹기도 하지만 공동체 정신으로 뭉쳐 위기를 기회로 삼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일보/백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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