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소식

‘한국해양’ 김상철 대표] 10년 연구 끝에 식물성 플랑크톤 대량 생산 성공 ‘조개 박사’
전남어촌특화지원센터
날짜 2018-06-02 조회수 290
201806020952391724885.jpg ‘박사’ 소리를 듣는 어업인이 있다. 여수에서 피조개, 새조개, 바지락 등 종패를 생산하는 김상철(46·사진) 한국해양 대표는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이학박사 학위를 지닌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해양수산 최우수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국립농수산대학 현장교수로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김상철 대표의 고향은 여수 안포마을로 농사와 어업을 함께하는 ‘반농·반어’ 마을에서 자랐다. 피조개 양식을 하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조개류 양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새벽바람을 쐬며 바다로 나가는 아버지를 보며 효율적으로 피조개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했다. 여수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그는 양식을 공부하기 위해 군산대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그 당시 조개류 양식에 대한 우리나라의 학술적 성과는 미미했다. 일본 문헌을 보면서 공부해야 할 정도로 조개류 양식에 대한 연구 환경은 척박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조개류 양식 공부에만 매달린 김 대표는 군산대에서 석사 공부를 마치고, 전남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대표는 조개류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면서 연매출 10억 원에 달하는 성공을 거뒀다. 끊임없는 연구로 맺은 결실이었다. 지난 2001년 종패 생산에 대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환경에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첫해 2000만 원의 수익을 냈다.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종패를 안정적으로 생산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김 대표는 10년에 걸친 연구 끝에 식물성 플랑크톤 먹이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됐다. 또 일정한 수온을 유지하고 미세한 진동도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견고한 종묘배양장을 구축했다. 체계를 갖춘 시스템으로 종패를 생산하면서 폐사율은 40% 줄었고, 수익은 그만큼 늘었다. 종패를 1년 365일 양식·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은 김 대표에게 든든한 자산이 됐다. 이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자 본연의 임무도 잊지 않고 있다. 그는 ‘미세조류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식물성 플랑크톤 연구와 신품종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올해는 고부가가치 수산물로 꼽히는 참소라 생산에 주력하려고 한다. 요즘은 중국산 종패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높게는 3배의 가격 차이가 나는 중국산과 겨뤄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연산에만 의존했다가는 중국산에 견줘 어촌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며 “수산 기술개발만이 유일한 희망이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일과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한참 전인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양식장을 돌아보며 2시간 동안 꼼꼼히 시스템을 점검한다. 공식적인 업무는 8시부터 시작한다. 매일 직원들과 아침 회의를 하며 세세한 사항을 논의한다. 상근직 7명으로 구성된 ‘한국해양’은 철저한 분업근무를 하고 있다. 어미 사육·위생사육·중간 양성·바다 담당 등 4개 분야로 업무를 나눴다. 건물 1층에서 위생 사육을 하고 2층에서 먹이를 주는 등 3층짜리 건물 전체가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종패에 먹이를 주고 돌보는 일은 자정까지 계속된다. 최근 3명의 사원을 채용하게 된 김 대표는 후배를 꾸준히 양성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조개류 양식업에 종사하는 어업인들에게 큰 문제 중 하나는 ‘인력난’이다. “어지간한 인내력 없이는 견뎌내기 힘든 일이라 중간에 그만 두는 후배가 많습니다. 조개류 양식은 3년 이상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재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어업을 한다고 해서 장화 신고 ‘물질’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해양수산신지식인 중앙연합회 기술혁신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양식 기술 연구를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인공양식 조개류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신품종 개발에 힘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광주일보/글·사진=백희준기자 bhj@kwangju.co.kr
보도자료 게시글 상세 폼